이수형(李秀亨):1435(세종 17, 을묘)∼1528(중종 23, 무자). 본관 羽溪. 자는 英甫. 호는 桃村. 景昌의 子. 태조조에 도평의사사를 지낸 의 현손. 문종조 문과 급제. 평시서령 역임.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비분강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생육신 원호·조려 등과 치악산에 들어가 단종에 대한 충절을 맹서함. 단종복위 운동이 탄로되어 수포로 돌아가자 영남으로 식솔을 거느리고 내려와 榮川(榮州) 知道里에 은거함. 道溪書院 見一祠 및 동악사 숙모전에 제향됨. ▣참고:{安東人物誌} 집필:이원걸
이성택(李聖宅):1828(순조 28, 무자)∼1900(광무 4, 경자). 본관 羽溪. 자는 宅安. 호는 奉修齋. 恒胤의 子. 외조는 潘南 朴必錫. 계모 강릉 최씨가 병환이 위급하여 지성으로 간병하였으나 차도가 없자 의원에게 진맥하고서 꿩고기가 특효라 말함. 이에 눈보라치는 鳳首山에 올라 꿩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와 탄식하니 이튿날 꿩이 스스로 날아오자 이를 잡아 계모에게 달여 드림. 유림에서 이러한 소식을 듣고 旌門을 내리고 포상토록 呈官狀을 올림. ▣참고:[墓碣銘](李炳觀 撰) 집필:이원걸
이종홍(李鐘弘):1869(고종 6, 기사)∼1926. 본관 羽溪. 일명 鐘洪. 홍릉참봉을 지냄. 조국광복의 뜻을 품고 독립운동에 주력하여 일경에게 감시를 당하다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그 해 3월 24일 태형 90도를 선고받음. 추서:대통령 표창(1993년). ▣참고:{獨立有功者功勳錄} 집필:이원걸
이주수(李 秀):1898(광무 2, 무술)∼1969. 본관 羽溪. 자는 文顯. 호는 學海. 경성제일고보에 재학중 일본의 무단정치로 우리민족이 유린·약탈당함을 보고 분개하여 항일학생 구국운동에 동참. 기미독립만세의 격문을 파고다 공원 근처에 살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의 옥고를 치름. 출감 후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후학계도에 선도적 역할을 다함. 교장으로 정년퇴임함. 홍조소성훈장과 녹조근정훈장을 받음. ▣참고:{安東版獨立史} 집필:이원걸